※ 199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기획한 원로탐방의 하나로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원이기도 하셨던, 작고하신
고 김행숙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이 이동식 선생님과 대담한 내용으로 (‘원로와의 대화’ 1991 대한신경정
신의학회(하나의학사) pp.133-160), 2004년 8월 이동식선생님께서 교정을 보신 글입니다.
김행숙 선생님께서 1942년 처음 정신과를 시작하셨을 때 우리나라 정신의학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으며 수련, 치료, 연구기관 등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동식 그러니까 정신과하는 건 경성제대 의학부 정신과 거기밖에 없었다구. 한국 전체에 정신병원도 서울 밖에 없고. 그러니까 경성제대 부속병원 정신과, 하라병원(청량리 뇌병원의 전신), 하라병원은 박영효가 일본 망명가서 하라란 일본여자하고 사이에서 난 아들이 의사로서 원장을 했지. 고다마라는 국립정신병원 전신으로 노량진에 일본 한지의사가 하는 정신병원이 있고, 성북동 여기 성북병원이라고 구주제대 출신 조교수였던 일본인하고 명주완, 이세연(이문기선생 엄친) 등 셋이 합자를 해가지고 세운 것이 있었어. 교육기관은 경성제대 정신과 뿐 이었고 개인병원은 고다마하고 하라 그리고 소화16년(1941년)에 개업한 성북병원, 그 셋이 서울에 있었고 그 밖에는 없었지.
김행숙 선생님께서 처음에 정신과 공부하시면서 히스테리의 최면술을 연구하실 때 혼자서 깨우치신 걸로 저희들은 알고 있는데...
이동식 그러니까 그 때는 교과서라 해 봤자 Kolle하고, Bleuler, Kretschmer 등 튀빙겐 대학이 조금 dynamic한 편이었고 보통은 그저 organic oriented 돼 있었으며 psychogenic한거 별로 인정 안 한단 말야. 노이로제, 물론 그런게 약간 있긴 있어도. 그러니까 뭐 교수고 조교수고 아무도 정신치료에 대해서 모르는 거라. 그러니 Kronfeld라고 독일 사람이 쓴 정신치료, 거기에 최면술이든지 정신분석이다 하는게 있어 책을 보고 내가 히스테리 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었더니, 완전히 이게 flexibilitas cerea 라서... 사람이 완전히 이게 요렇게 하면 요대로 있고......
그러니까 두 환자를 봤는데 두 번째는 이렇게 탁 보기만 해도 됐어. 그 당시에 독일정신의학, 신경정신잡지에 최면술을 걸어서 암시를 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동전을 놓고 이게 지금 달아 작열하고 있다, 이렇게 암시를 주면 화상이 생기는 이런 것도 사진에 나오고......
김행숙 1954년에 미국으로 가셔서 4년 동안 주로 정신분석에 대해 연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동식 정신분석만 한 게 아니라 레지던트 수련을 2년 받고 또 할 거 없다고 그러니까 appointment 취소하고 주립정신병원에 2년 근무하고... 뉴욕에 있을 적에....
김행숙 예, 그 당시에 미국으로 가실 때의 기대와 4년 뒤의 결과, 그리고 미국생활에 대한 평가 등을 좀 말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동식 그러니까 우린 환자가 적으니까, 그 당시에는 정신과의사 10년을 해도 진전섬망 환자를 전혀 볼 수가 없었다고. 아, 그런데 뉴욕 벨뷰병원에서는 하루 저녁에 진전섬망 환자가 80명씩 밤에 입원하드라구. 매일, 저녁 때 되면 말야. 그러니까 병동은 9층 건물인데 정신과 병동이 한 20개 돼요. 그러니까 뭐 오만 종류의 환자를 다 볼 수 있었어. neurologic disease가 있고 mental disorder가 있는데 신경과의사하고 정신과의사가 같이 보며 또 내과병동이 있는데 정신이상이다 하면 내과의사하고 정신과의사가 같이 보고, 뭐 알콜중독자 또 prisoner라고 정신감정병동이 있거든. 거기는 일개 경찰서가 와 있어. 첫 문은 경관이 열어주고, 서장이 있고, 그 다음에 간호원이 열어 주는 문이 따로 또 있는 2중으로 경비가... 정신감정하는 사람은 전부 거기에. 소아정신과도 있었는데 Lauretta Bender가 과장이었지.
그러니까 한국서는 사례가 적었지만 거기서는 다양하고, 풍부한 임상경험이 가능했지. 그러니까 본래는 정신분석 공부하러 갔는데 그런 정신분석은 물론 supervisor에 analyst들이 orthodox, neofreudian 등 다 있었지. 또 미국사회가 어떻다 하면서 미국을 가 본 사람들도 미국사회를 잘 모르더라고. 왜냐하면 이미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망상을 형성해 가지고 미국 왔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것도 안 본다 이거야.
한 예를 든다면 말이야, 우리 후밴데 모 대학 학장 하던. 친구가 내과하는데 나보다 일년 먼저 미국에 와 있었지. 이렇게 신문 같은 거 쌓아놓고 파는 무인판매대를 보고 미국엔 도둑도 없고 지상천국이라고 그것을 미국의 전부로 알더군. “하지만 어제 너 신문 안봤나. 어제 신문에 FBI 통계가 강도가 몇 건이고 말야, 무슨 빈집털이가 몇 건이고, 무슨 살인... 뭐 이런 좍... 범죄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 하느냐. 나는 여기 오니까 대뜸 모든 직원이 나보고 말이야 도둑을 조심하라고 하더군, 처음부터. 그러니까 병동을 잠가 놨는데 그 안에 있는 의사실에 청진기라든지 책을 두지 말라고 미국의사가 나보고 그래. 그리고 간호원도 말아야 절대 청진기나 이런 거 두지 말라고. 그러니까 외국 사람이니까 가르쳐 주는 거지. 그리고 내 혼자 자는 방에 청소하는 여자가 말야, 절대 방에 귀중품을 두지 말라. 이렇게 모든 사람이 도적을 조심하라, 이런데 넌 왜 그런 소리 하느냐”고 해도 못 알아듣더군.
2년 후에 내가 구라파학회에 갈 적에 그 친구가 날 만나자마자 누구한테 도적맞은 얘길 하더라구. 미국에 도적 없다 하던 바로 그 친구가 그 동안에 모 대학 연구실에서 책을 몇 백불, 학생이 틀림없이 가져갔다는 거야. 또 자기 부인하고, 부인이 여의사인데, 둘이 사는 아파트에 뭐 카메라다 양복이다 다 잃어 버렸다고...
언제 가져갔는지 모른다 이거야. 평소에 안 쓰는 거 여름 같으면 겨울 양복 가져가고. 그러니 뭐 언제 도둑맞은 지도 모른다. 나보고 대뜸 도둑맞았다는 거야. 난 미국에 있는 동안에 admitting office에 타임지 두고 온 것, 그것밖에 도둑맞은 게 없다구.
그러니까 그게 전혀 현실을 바로 못 본다 이거야. 가만 보니까 미국 올려고 애쓰는 동안에 한국을 하도 나쁘게 보고 미국은 아주 미화해 가지고 이미 미국 오기 전에 미국에 대한 그런 것이 형성돼 있더라구. 가만 보니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신문기사고 뭐고 그런 게 안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미국서 한달쯤 생활해 보니. 아! 미국사람은 양심이 없구나. 이런 결론에 도달했어. 그래서 한국의사나 미국의사한테 얘기하면 납득을 안 하드라구. 그러다가 한두 달 지나니 Erich Fromm의 ‘Sane Society'란 책이 나왔어. 그 책 첫머리에 그런게 나와요. 미국 사람은 양심이 없다. 양심이 규칙이나 법률로 externalize돼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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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