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기획한 원로탐방의 하나로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원이기도 하셨던, 작고하신
고 김행숙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이 이동식 선생님과 대담한 내용으로 (‘원로와의 대화’ 1991 대한신경정
신의학회(하나의학사) pp.133-160), 2004년 8월 이동식선생님께서 교정을 보신 글입니다.
- 안과로 시작한 의사생활 -
김행숙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원로탐방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해 고희 기념 학술대회에서 인간의 불행이란 감정처리를 잘 못하는 데서 오고 감정처리를 잘 하는 데서 행복이 온다는 것을 어릴 때에 깨달았으며, 진실과 위선에 대해서 예민하게 지각하셨고, 이웃 어른들로부터 인생을 환히 안다, 중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정신치료 대가로서의 싹이 어릴 때부터 이미 보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정신과의사로서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은 이러한 어릴 때부터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였습니까? 아니면 다른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이동식 아니, 뭐... 원래는 내가 대구고보를 다니다가 청주고보(1938년 졸업)로 가서 영어선생이 일본사람인데 잘 가르치는 사람이었어. 3학년 때... 그 사람은... 대학을 안 나오고 상선 타고 다니다 거기서 영어를 배웠지. 저학년 영어를 잘 가르쳤다고. 그러니까 대구고보선 내가 공부를 통 안했는데 그 선생 시간은 공부를 하니까 영어를 딴 사람보다 잘 하고 밤낮 모의시험에서 상 받았지.
4학년에 올라가서 배운 영어선생은 고등사범학교 부설 영어교원양성소 나온 일본사람인데 그도 아주 공부를 많이 해 고등교원검정시험도 패스했지. 고등교원은 요새 같으면 전문학교, 대학 이상이지. 그러니 뭐 물으면 다 대답을 해주고, 그러니까 내가 영어를 아주 잘 했다구. 그래서 어느 학을 할까. 내가 늘 모의시험은 일등 했지만 가정형편은 일본 학비 대기가 어렵고.
그래 가지고 대구의전이면 왜관에서 기차 통학할 수 있겠다 싶어 거기 입학원서를 내놨는데 막바지에 가서 연령 미달로 말이야 시험 자격이 없다 이렇게 됐거든. 그래서 1년 재수한다고 말이지. 원서를 사고는 좋다고 이렇게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학교 사환을 보내 학교 성적이 너무 좋아 아깝다면서 서울대의 이공학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는 며칠 남았으니 학비 같은 건 자기가 장학금을 해주겠다며 권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이공계통은 한국 사람은 통과해도 소용없다고 가지 말라고 해서 안갔어.
그래서 우리 삼촌이 일본산파 증명서를 내어 내 나이를 한 살 올려 가지고 마감 직전에 대구의전에 갔는데 18살에 거 뭐 시체해부다 영 재미가 없단 말야. 그때 부총리 지낸 김준성이도 같이 들어갔어. 그는 시체해부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재수해 가지고 다음 해 경성대 들어갔거든. 그러니까 영어, 독일어는 잘 했겠지. 그래서 나도 어떻게 그만 둘까 몇 번이나 세 번이나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뭐 의사면허가 있으면 밥을 먹으니까 내 마음대로 월급을 타서 뭘 할 수 있다 하고 버틴거지. 그러니까 입학성적은 2등인가 했는데, 나올 적에는 아마 뭐 꼴지... (웃음).

그러니까 전쟁말기라 일본 갈 것도 막막하고, 입학은 뭐 2등인데 졸업은 꼴지라든가 해서 성적도 안되겠다 그랬거든. 일본유학을 포기하고 나니 안과는 하기 싫은데 월급을 주니까 안과에 있으면서 정신분열증에 관한 책을 읽고 있으니까 구주대학 정신과에 갔다가 돌아온 일인(日人) 1년 선배 한 사람이 지나 가다가 “아 당신 정신과 관심이 있군” 하기에 그렇다고 대답해 놓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전문학교는 정신과가 없거든. 일제시대 내과교수가 강의만 하는 거야. 난 3학년 때 뮌헨대학 주임교수 Kolle의 독일어로 된 교과서를 흥미있게 읽었어. 당시의 경향에 비해 Kolle는 아주 새로운 좀 역동적 이론을 갖고 있고 그걸 1938년 나온 새 교과서에 담았는데 그걸 내가 주문해 읽었다고.
그런데 그 선배가 한번 정신과가 어떤지 구경이라도 해보라 이런 거야. 1942년이었지. 일제시대 경성제대라면 식민지대학이라는 정도 이상으로는 생각 안했거든. 그래 그럼 뭐 성대 정신과 한번 구경하러 가보자면서 구경하러 올라 왔다가 말이야 정신과를 하게 된 거야 우연히. 그러니까 인자 의사를 한다 하면 정신과 밖에 할 게 없다 이거야 말하자면, 내가 인문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으니까.
또 정신치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 학생 때 나보다 5년 나이 많은 친구가 여자도 잘 꼬시고 뭐 이렇게 무드를 조성한답시고 일종의 일상생활의 최면술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그 Kolle 교과서에 그런 게 있어요. ‘일상생활에서의 최면’ 이라고 그걸로 인자 의사를 한다면 정신과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신경정신의학회보 1월호에 실린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있는 임문빈이가 그 당시에 의국장이고 그 전까진 일본 조수들과 의사들이 있다가 다 불려갔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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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