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 선생님께서 92년 10월 25일, EBS 라디오방송의 프로그램인 ‘마음의 창을 열고’에 출연하여 道에 대하여
대담하신 내용을 녹취한 기록입니다.
사회자: 그런데 서양문화지만 카운슬링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정신적인 고민에 부딪혔을 때 상담자와 이렇게.
이동식: 그게 일종의 정신치료지.
사회자: 그러면 카운슬링하고 道의 목표는 일단 어떤 불안을 없애고 정신적인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
아니겠습니까? 그 두개의 차이점이라면, 박사님?
이동식: 그게 인자, 뭐, 그게 기독교신학 유명한 Paul Tillich라고, (예) 그 사람 저서를 보면 불안을 두 가지로 분류하거든, 병리적 신경증적 불안하고, 실존적 정상적인 불안, 뭐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 (예) 그런데 거기는 뭐 그건 정신분석이나 무슨 방법을 해도 그 병리적인 불안만 없앨 수 있지 실존적 불안은 정상적인 불안은 없앨 수 없다. 그런데 道는 바로 실존적 불안마저 없애는 거다. 그거는 생사지심(生死之心)을 타파, 말하자면 쉽게 말해서 죽음을 불안 없이 직면한다. 이런 마음이 되어 있으면 정상적인 불안도 없다 이거지. 왜냐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있는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는 거니까, 내가 죽게 되면 그러면 죽는다. 응, (예) 이런데, 뭐, 정상적 불안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차이지.
사회자: 서양의
이동식: 서양의 정신치료와 道와의 차이다. 쉽게 말해서 서양의 미국에서 無我心理學, 응, 무아심리학 치료라는 게 있어요, 이론상은 道하고 같은데 실천이 그게 잘 안된다는 거지. 그것은 자기초월(自己超越), 응, 그러니까 서양의 정신치료 정신분석은 자기초월이 안 되어 있다. (예) 자기초월, 그게 바로 생사지심을 타파하는 것이거든. 자기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다. 자기 목숨이 없어져도 응, 불안이 없다. (예) 그러면 뭐 아무 불안이 없다.
그런 차이지.
사회자: 서양의 정신치료는 병적인 불안을 없애주는데 그치고,
이동식: 그렇지. 정상적인 그것은 다루지 않는다. 道는 바로 정상적인 실존적 불안을, 죽음에 직면하는데 불안 없이 받아들인다. 그걸로 해서 없앤다. 간단하지. 허허허.
사회자: 인간의 원래 가지고 있는 (그렇지) 원래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렇지) 죽음에 대한 불안, 그것은 道를 통해서만 해소할 수 있다 그런 말씀이신데요.
이동식: 서양의 실존철학이 그런 거라. 죽음에 대한 불안의 자각, 그게 실존철학이다. (예) 그러니까 그걸 극복하는 게 수도다.
사회자: 예. 그러면 서양의 어느 철학자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래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떤 절대자에게 초월하는 수밖에 없다는 종교적인 얘기를 했는데, 그러면 道라는 것이 서양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런 종교의 위치에 해당되는 거겠죠?
이동식: 글쎄, 인자 그러니까, 옛날에는 서양 사람이 道를 뭐 神이다, (예) 존재다, 이렇게 번역했다고, 道를 神이라고 번역했어요. (예) God, 응 그러니까 결국 그건 절대자 카는 걸 자꾸 추구해가면 그게 인자 자기로 돌아온다. Paul Tillich도 말이야, 실존적 유신론적 실존주의에 있어서는 신들 위에 여러 가지 신, 종교 위에 신을 만난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있어서는 자아를 만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courage to be 라고.
사회자: 정신건강, 이런 면을 개인에 국한시키지 말고 한번 국가에 확대를 시켜서 보면 어떻습니까? 요즘 우리나라, 그 우리 국민들의 어떤 精神健康度라고 할까요? (네) 어떻게 보십니까?
이동식: 뭐, 건강한 싹도... 서서히 우리 걸 찾자, 결국, 정신건강이라는 게 인제 道도 본래 자기로 돌아가는 것 본래 면목으로 돌아간다. 이런 것도, 불교에서도 참선하는데, (예) 서양의 정신분석도 자기실현, 자기현실화, Jung같으면 개인화, 남이 아니고 나 자신이 되는 게 인자 道이고 정신건강이고 주체성이다. (예)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뭐 인자 뭐 일제시대 해방 후에 맨, 뭐 친일파 뭐, 일본세력을 못 이겨서 주체성이 아주 미약하단 말이야. 그런 점에서 건강이 나쁘지. 지금 말이지, 내가 볼 적엔 임진왜란이나 마찬가지 상탠데. 대통령하겠다는 사람이나 뭐 좀 자각이 없단 말이야, (예) 현실파악이 안되어 있다,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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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