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 선생님께서 EBS 프로그램 ‘생각하는 삶’에 출연하여 ‘道란 무엇인가’ 제목으로 대담하신 내용을 녹취한
기록입니다. (녹화: 90. 11. 16, 방송: 90. 12. 8)
사회자: 예.
이동식: 생사지심을 타파한다. 이러면 존재론적인 불안도 없어진다. 항상. 정상적인 불안도 없다 이거지.
그게 이제 죽음을 극복하는 거. 자기가 죽을 때 아무런 불안 없이 죽음을 직면한다. 그런데 이제 서양도
요샌 미국에서 이제 미리 자기 -우리 한국식으로- 묘를 만들어놓고 이런 기풍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전에 한국 사람들이 우리가 자기 죽을 묘를 그거 해놓고 관을 짜놓고 하는 것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그런데 이제 서양도 보면 실존철학 카는 거는 이제 그거란 말이야. 죽음에 대한 공포의 자각. 그것이 서양의 실존철학이다. 그러나 이제 해결이 없단 말이야. 그 해결이 수도다 이거야.
사회자: 예. 그러니까 수도의 과정을 통해서 죽음을 극복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되겠다.
이동식: 그걸 받아들여야지 완전히 마음이 비워진 거다 이거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는 한 그것은 사물을 완전히 바로 볼 수가 없다 이거지.
사회자: 그런데요 동양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사상이 아닌가 싶거든요?
이동식: 그런데 사실은 도의 입장에 본다면, 사상이라 하는 그거는 망상이다. 착각을. 여기 뭐 스님들도 도사상 카는 데 사실은 사상을 없애는 게 수도다 이거야. 하하. 생각을 없애는 거.
사회자: 그렇다면
이동식: 도라 하는 것은 항상 여기 전부가 도다 이거지.
사회자: 저희가 도사상이라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 그냥 도라고 표현해야 되겠네요.
이동식: 따로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생각이 아니다 이거지. 현실이 도다 이거지.
사회자: 예. 그런데 아무래도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정신생활에 이 도가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습니까?
이동식: 에. 우리 조상들이야 뭐 항상, 내가 이제 런던대학에 갔을 때 79년 그 때, 지금은 은퇴하고 없는데 정신분석을 거기서 지도, 책임이 있는 교수를 만났는데 내가 이제 동양 환자하고 서양 환자하고 뭐가 다르냐?
사회자: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동식: 응. 아주 재미있는 그거를 하더라고. 에. 아시아 환자는 존재에 관심이 많고 서양 환자는 doing, 뭐 하는 거에 관심이 많더라. 이게 아주 중요한 동서의 차이입니다.
사회자: 왜 그럴까요?
이동식: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존재와 소유」에리히 프롬(Erich Fromm), 번역이 되어있지만 그거를 이해하는지 모르겠는데, 존재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 어떤 사람이 되느냐. 이것이 존재에 대한 관심이다 이거지. 소유라는 것은 이건, 그러니까 내가 “서양 문화는 노이로제 문화다.” 내가 서양 교수들보고 이렇게 하니까, 내가 정신분석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니까 아주 참 명쾌하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소유라든지 뭘 하려고 하는 것은 노이로제다. 말하자면 노자에 유위(有爲)다. 유위. 유위라는 게 노이로제, 욕심에서 나온다 이거지. 무위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자기가 해야 할 것을 한다.
사회자: 그러니까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진실 된 자아를 찾는 것이라고 저희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동식: 그렇지. 그게 도다 이거지.
사회자: 네.
이동식: 뭐 하려고 하고, 가지려고 하는 것은 도와 반대로 가는 거다 이거지.
사회자: 예.
이동식: 욕심에서 나오는 거다.
사회자: 그런데 일부에서는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그 목적이 윤리적인 가치가 있는가 조차도 생각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많은 사회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듯도 한데요. 우리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하며는 도를 실천할 수 있을는지요?
이동식: 글쎄 이제 지금 그런,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카는 게 그게 이제 말하자면, 뭐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른다, 이러면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은 좋은 일을 하고, 남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또 높은 자리에 앉아서 많은 사람을 위해서 봉사를 한다. 이런 건 좋은 거란 말이야. 나쁜 거는 아닌데. 아까 말한 그 존재. 어떻게 하느냐? 공자의 말에도 그런 게 있는데 ‘의롭지 않게 부(富)하고 귀(貴)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 말하자면 의롭게, 정의롭게 부자가 되고 정의롭게 귀하게 된다. 이것은 좋은 거란 말이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고.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는 게. 음. 그게 근본 문제까지 가야 되는데. 우리가 이제 그 지금 대외관계 이런 것을 보더라도 신라까지도 올라가지만, 가깝게는 임진왜란, 임진왜란에 대한 반성이 아직 안 되어있다 이거야 자기 검토가.
1 2 3 4 5
Untitled Document
Copyright(c) 2004 Korean Academy of psychotherapists. All rights reserved.
※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