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식 선생님께서 EBS 프로그램 ‘생각하는 삶’에 출연하여 ‘道란 무엇인가’ 제목으로 대담하신 내용을 녹취한
기록입니다. (녹화: 90. 11. 16, 방송: 90. 12. 8)
사회자: 예.
이동식: 처음에 출발할 적에는 부정도 억압이 되고 긍정도 억압이 되어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다.
그러니까 불교의 참선에서는 360도 도는 게 수도의 목표인데, 진면목, 본래면목, 본래의 자기의 마음이다.
그게 이제, 그런데 이제 서양의 정신분석은 아까 이야기하듯이 자기집착까지는 못 벗어난다 이거지. 그저 자기 그런 문제. 그게 이제 차이지.
사회자: 네.
이동식: 정신분석과 도의 차이. 도는 궁극적인 최고 경지를 지향한다. 그것은 생사지심을 타파, 자기집착을 벗어난다, 자타(自他)가 없는 이런 경지.
사회자: 그러니까 도사상은 ‘긍정과 부정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이제 저희가 이해해
볼 수가 있겠는데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누구나 약간씩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들 하는 데요.
현대문명과 도와 관련해서 좀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세요.
이동식: 그런데 현대문명이라는 게,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현대문명이라는 게 서양문명입니다
우리 문명은 완전히 말살을 하고 있는 상태니까. 그러면 얼마 전에 죽었는데 루이스 맘포드(Lewis Mumford)라고 미국의 철학자인데, 그 사람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면 과거, 말하자면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의 역사는 야만과 붕괴의 역사다 이거지. 그건 왜 그러냐하면 보통 한국의 학자들, 그전에 내 공개 세미나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지마는, 잘못 알고 있거든. ‘르네상스가 자아의 해방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 서양의 정신분석 이론으로 보면 본능의 해방이다 이거지, 자아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는 약화되었다 이거지. 그러니까 자기이익, 자기민족의 이익만 생각하고, 경쟁하고, 남을 정복, 자연을 정복한다든지 타인을 정복한다든지 타민족을 정복한다든지, 이러한 그 욕망, 욕망의 해방이 르네상스다 이거지.
사회자: 네. 오히려 집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질 수 있겠네요.
이동식: 동양에는 욕망을 없애는, 컨트롤하는 것을 몇 천 년 목표로 삼았고. 그것이 동서의 큰 차이가 있는데 그렇게 나오다보니깐 우리는 자연(自然). 도(道)는 조화거든? 타인이나 자연과. 이것은 자꾸 정복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거꾸로 이제 정복을 당하게 지금 되어있다 이거야, 자연한테. 우리가 멸망을. 그러니까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나? 루이스 맘포드는 자기검토 -self-examination-, 자기제어 -self-control-. 그러니까 자제(自制)가 도다 이거지. 자기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 지금 서양에서도 카운슬링이다 정신분석이다 하는 게 전부 self-control하는 힘을 기르는 게 그게 치료의 목표다. 그러니까 서양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도다. 맘포드는 도를 모르지요. 모르지만 ‘자기검토, 자기제어’라는 게 바로 도란 말이야. 유교 같으면 극기(克己), 불교의 자기조복(自己調伏), 자기를 지배한다, 자기 지배하는 것이 도란 말이야. 자기감정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 노이로제, (웃음) 그건 도에 어긋나는 거다 이거야.
사회자: 그런데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 중에 하나가 바로 죽음이 아닌가 싶거든요?
이동식: 뭐, 뭐야?
사회자: 죽음이요.
이동식: 아 그렇지.
사회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 중에 하나가요. 그렇다면 도사상에서는 이러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동식: 글쎄 이제 그러니까 내가 국제학회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하고, 논문도 썼지마는 그게 차이가 그거라요.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여기 번역이 되어있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Courage To Be」라는 거기도 나오지마는, 서양의 정신분석이나 이런 것은 신경증적인 불안은 없앨 수 있지마는 존재론적인, 실존적인 불안은, 정상적인 불안은 없앨 수 없다.
사회자: 네.
이동식: 그런데 도는 이제 그런 정상적인 실존적인 존재론적인 불안이 어디서 생기느냐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생긴다 이거야. 이건 누구든지 가지고 있는 거니까 그것을 없애는 게 도다. 수도(修道). 그것은 죽음을, 자기가 죽어야할 적에 아무런 불안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응?
1 2 3 4 5
Untitled Document
Copyright(c) 2004 Korean Academy of psychotherapists. All rights reserved.
※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