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봄에 역경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모씨가 우리 병원에 우울증으로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사람이 대혜선사(大慧禪師)의 <서장(書狀)>을 꺼내놓고 여기 저기를 나에게 물어 보는데 대답을 하다 보니 불교라는 것은 근본이 집착을 없애는 것이고 마음을 정화하는 정신치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부터 불교나 동양의 도(道)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지는 오래였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이 일을 계기로 불교를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당시 동국대학교 총장인 조명기박사에게 부탁을 해서 당시 조계종 교무부장었던 행원(지금은 숭산)스님을 강사로 모시고 몇몇 교수들과 <서장>을 공부했다. <서장>은 우리나라 강원에서 중등과로 배우는 사집(四集)중의 하나로서 당나라 때 간화선(看話禪)을 주창하고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한 고승으로서 바른 소리를 하다가 임금에게 밉게 보여 18년인가 19년을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대혜선사에게 고관들이 서신으로서 지도를 바라는 서한을 보내온 것에 대한 답신을 수록한, 말하자면 서신으로서 도를 상담지도한 서한집이다.
서양의 정신치료 정신분석을 먼저 공부한 후라 너무나 절실한 대목이 많지만 몇가지만 든다면, 첫째로 왕내한이 다섯번째 아들을 잃고 슬픔을 호소하자 대혜는 그 슬픔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주고 울고 싶으면 울고 속에 있는 모든 감정을 다 퍼내고 나면 슬픔도 기쁨도 재미도 없는 경지에 이른다. 이것이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대목이다.
두번째로는 애웅지물(碍熊之物) 즉 가슴에 거리끼는 물건을 제거하면 각(覺)이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몽각일여(蒙覺一如) 즉 각이면 꿈속에서도 현실을 보고 눈을 뜨고 있어도 현실을 본다는 대목이다. 중생은 꿈과 깨어 있을 때가 다르고 각성시에나 꿈속에서나 망상속에 살고 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마명(馬鳴)보살의 저술로서 대승불교의 근본이 되는 마음에 대해 밝힌 논서이다. 여기서도 감명깊은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은 두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첫째로 깨달음(覺)에 여러가지 단계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특히 비구경각(非究竟覺)과 구경각을 구별하는 데 있어 긍극적인 깨달음, 즉 부처는 마음의 처음모습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점이다. 말하자면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아야 구경각이다. 비구경각은 여러가지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을 자각하지만 생각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과 의식과 행동에 관한 연결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상의 몇가지 점은 내가 서양의 정신치료와 도를 통합하고 도가 최고의 정신치료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작업에서 결정적인 확신과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또 작년 8월 ‘동서양 정신치료의 통합’을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비서구권에서는 처음이었다) 제16차 국제 정신치료학회의 성공을 거두게 한 바탕이 되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