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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자료실 |
| 제 목 |
줄서기 문화? (한국도덕교육학회에서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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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3-10-02 21:34:05 |
조회수 |
2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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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덕교육학회라는 곳이 있더군요(야후나 엠파스 등으로 찾으시면 됩니다). 그곳에서는 인격교육이라는 용어를 쓰더군요. 거기 좋은 글이 실려 있어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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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 문화?
줄서기 운동이 일어난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오랜 동안, 그리고 상당히 지속적으로 펼쳐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이 만족스러운 결실을 거두지는 못 한 것 같다. 물론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요즘 많이 나아졌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나라의 사정을 일본과 비교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면, 그 성과라는 것이 참으로 미미해 보이고 '우리 나라는 아직 멀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하여 휴지나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 자동차 정지선 지키기 등과 더불어 줄서기 운동이 다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요즈음은 단순한 줄서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줄서기'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고난도의 줄서기로서, 여러 대의 공중전화가 있을 경우, 각각의 전화기 앞에 줄을 서서 여러 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줄만 만든 채 대기하고 있다가 제일 앞에 선 사람이 자리가 나는 쪽으로 가는 방식이다. 그 동안의 운동의 경험으로 인하여 줄서기가 '문화'와 관련있다는 통찰이 생겼는지, 요즈음은 '줄서기 문화'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줄서기는 과연 좋은 것인가? 이것은 이상한 질문으로 들릴 것이다. 우루루 달려들어 서로 먼저 타겠다고, 서로 먼저 보겠다고, 서로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떠올려 볼 때 줄서기를 하는 것은 질서있게 보일 뿐 아니라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게다가 줄서기와 붙어 다니는 담배꽁초 안 버리기, 정지선 지키기 등을 같이 생각해 보면 줄서기 운동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로 보일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줄서기를 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 빠른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주장도 나와 있다. 줄서기의 효과에 관한 이 주장도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서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의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담배꽁초 안 버리기 등이 아니라 오로지 줄서기라는 행위라는 점이다. 줄서기가 신속한 일 처리에 효과가 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의문의 대상은 줄서기라는 행위에 배태되어 있는 에티켓이나 도덕성, 또는 줄서기를 할 때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마음가짐이 과연 훌륭한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줄서기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그것이 질서를 유지시켜 준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질서 말인가? 물론 '외양'의 질서로 치면, 한 줄로 조용히 서 있는 것이 질서있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질서로 말해도 그러한가? 줄서기의 원리는 다른 게 아니다. 그것은 '먼저 온 사람이 먼저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늦게 온 사람이 먼저 한다'거나 '아무나, 혹은 목소리 큰 사람, 힘 센 사람이 먼저 한다'는 것보다는 질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들이 그것뿐인가? 버스를 탈 때에 줄서는 것과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서로 일관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리 양보를 큰 미덕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를 보다 자세하게 생각해 보자.
방금 말한 바와 같이, 누가 먼저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줄서기는 '먼저 온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가장 무식하고 무례한 대답이다. 가능한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을 배제하고 오로지 '그 곳에 온 순서'만 고려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정이 급하거나 딱한 사람'(버스의 경우라면 노약자)이라거나 '연장자'가 먼저 해서는 왜 안 되는가? 줄서기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줄서기의 유일한 대안은 서로 먼저 하겠다고 아우성 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지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줄서기의 대안 가운데에는 사정이 급하거나 딱한 사람, 혹은 노인들에게 양보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줄서기 운동은 이러한 미덕이 발휘될 기회를 봉쇄해 버린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줄서기에는 이보다 더 심각한 또 다른 마음가짐이 가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질서나 에티켓, 도덕 등을 의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마음가짐이다. 우리들은 사태를 권리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데에 익숙하다. 무슨 권리 말인가? 물론 재화와 써비스에 대한 권리이다. 우리들은 마치 빚 받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인 양 자기가 지금 무슨 손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항상 질문하고 있다. 물론 우리들은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들이어서 남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리(功利)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내 권리만 내세우지는 않으며 공정하게 그 권리를 분배하고자 한다. 이것이 현대인의 도덕이다. 이는 물론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낫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삶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의 관점에서 사태를 보며 항상 빚 진 사람처럼 살아갔다고 한다. 무슨 의무, 무슨 빚 말인가? 그것은 지금 자기가 누리고 있는 재화와 써비스에 대한 빚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재화와 써비스를 최소로 줄여 소비하고 또한 남들을 위하여 그것을 최대한 생산해 내는 것만 가지고는 해소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을 사로잡은 의무는 재화와 써비스라는 용어로는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의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공리의 용어로는 파악되지 않는 의무― 이것이 물론 삶의 또 다른 차원을 이루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은 공리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인격을 도야하고 발휘하는 일로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보아 인격은 예절이나 에티켓을 통해 도야되고 발휘된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절은 공리의 용어로 설명되는 것, 즉 공리의 합리적 분배가 아니라, 인격의 용어로, 즉 인격도야의 기회로 설명된다. 예절은 공리를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설사 수단이 된다고 하여도, 바로 인격 도야의 수단이며, 그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그 자체로 즐겨진다고 말할 수 있다. 별도의 시공간에서 그 자체로 즐겨지는 예절을 의식이라고 한다. 제사나 애국 조회같은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일상 생활의 예절은 일상의 시공간, 즉 공리를 생산, 소비, 분배하는 바로 그 곳에서 집행된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달리 예절이 공리의 생산, 소비, 분배를 잘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공리의 생산, 소비, 분배가 예절을 연습하고 향유하는 수단이나 기회인 양 간주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은 성대한 의식이, 음악처럼 연주되고 감상되는 장이었다.
줄서기에는 권리 위주의 시각이 가정되어 있다. 혹은 재화와 서비스에의 관심이 가정되어 있다. 이러한 분석에 의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거기에 의무 위주의 시각이나, 예절을 그 자체로 즐기는 생각이 가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몇 십 년 동안 줄서기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아직도 그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우리에게는 숭고한 옛날 식의 마음가짐이 문화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뿌리뽑아야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보존하고 확충하여야 할 것이다. 줄서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낙관론을 비웃으면서, 세상에는 천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남에게 차례를 양보하면서 작은 기쁨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어깨를 비비고 뚫고 들어가 먼저 타고, 먼저 받고, 먼저 먹으려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런 것을 볼 때면, 하다못해 일본 사람들처럼 줄이라도 잘 서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하지만, 줄서기가 이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며, 이상적인 방향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한국도덕교육학회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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