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4년 신년호에 실린 '아버지의 짚신'이란 제목의 만화를 보고 동아일보 자유토론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신년특집 만화 '아버지의 짚신'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짚신을 삼아서 먹고사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 짚신이 항상 더 비싸게 팔립니다. 아들이 아무리 졸라도 그 비결을 알려주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야 잔털를 제거해서 마무리를 잘 하라고 알려주더라는 겁니다. 혹시나 새로운 해석이 있을까 해서 읽어봤지만, 역시나 '이것이 우리나라 기술자들의 고집'이고 '그래서 발전이 더디다'는 자기비하적 해석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애써 터득한 기술을 남에게 알려주기 아까워하는 것은 어느나라나 있는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더 심하다는 근거를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위의 이야기를 '별거아닌 걸로 치사하게 굴지 말자'는 교훈으로 본다면, 기술의 개방과 공유를 강조하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알고보면 별거아니다'는 교훈으로 본다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손님들이 한 눈에 알아보고 값을 더 쳐줄만큼 뻔한 차이를 왜 아들은 몰랐을까, 왜 손님들한테 한번 물어보지도 않았을까, 왜 매일 아버지와 같이 일했을 텐데도 아버지가 잔털을 마무리하는걸 주목하지 못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아들이 젯밥에만 욕심이 있고 염불에는 정성이 없는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격을 깨우치려는 아버지의 속깊은 배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뭏든 우리민족에 관한 거라면 무조건 비하하는 열등감이 문제입니다. '고려청자 기술이 전해지지 않는 것도 비법을 잘 전수해주지 않는 민족성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화장실에서 똥누다가 문창살과 문고리를 보고 착안한 것이다' 등등, 열등감에서 비롯된 황당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심코 옮기는 이야기 속에 배어있는 그런 열등감을 모두가 좀 더 각성하는데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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