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 신경정신과 원장은 2 년 전 추석이 막 지났을 무렵을 떠올린다 .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오니 병원에 낯선 사람 두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지방검찰청 수사요원이라고 했다 . 향정 때문에 조사를 나왔다는 것이다. 마약취급자로서 향정신성의약품을 취급하는 경우 그 수급내용을 정확하게 작성하여 비치해야 하는데 그의 병원에서 취급하는 향정신의약품인 달마돔 , 아티반 , 데파스 등의 실재고량이 수급대장에 기록된 것과 다르게 기재되었다고 하면서, 이는 향 정신성의약품 판매, 수수에 관한 장부를 작성하지 아니한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김원장은 졸지에 마약사범으로 몰려 200 만원의 벌금으로 약식기소를 당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복잡하게 얽히는 것이 싫어 처음에는 그냥 벌금을 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 그러나 속에서 뭔가 참을 수 없는 ‘분(憤)’ 같은 것이 일었다. 김원장은 약식기소명령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고등법원에서 최종 승소판결을 받았다.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형 약식기소된 후 이에 불복, 승소판결을 얻어낸 김종하 신경정신과 원장
어려운 결정이셨을 텐데요. 소송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정도의 잘못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억울했습니다. 잘못된 법 조항 때문에 의시들이 매번 이렇게 곤혹을 당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전과자가 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소송을 해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험이 공부가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말입니다.
어떤 절차로 진행하셨습니까?
먼저 정개협(대한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과 상의를 한 후 의협(의사협회)을 통해 전병남 변호사를 소개 받았습니다. 사안을 검토해본 결과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법리해석의 문제라는 것이죠. 수급대장에 단 며칠동안 기재하지 않은 것이지 아예 작성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이 같은 단순 관리부실에 대해 마약사범으로 몰아 전과자를 만든다면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공무원 등은 처벌을 받아도 어느 정도로 받아야 될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승소판결을 받고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후련했지요. 고법에서 승소판결이 났습니다. 저는 끝까지 해볼 양이었습니다. 대법원까지도 가고 그도 안되면 헌법소헌까지 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잘못된 법, 악법은 바꿀 기회가 생기면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판결의 내용과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래도 우리나라에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은 향정신성의약품의 수급대장에 그 판매, 수수에 관한 내용을 계속 기재하여 오다가 적발되기 며칠간의 판매, 수수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바, 이러한 점에 비추어보면 피고인이 수급대장에 위 내용을 기재하지 않은 정도가 위 수급 대장 자체를 작성, 비치하지 않은 것과 동일시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에 선고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판결의 의미는 약의 알 수 틀린 것은 행정조치의 사항이지 미작성에 의한 관리 소홀로 인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약의 알 수 틀린 것 가지고는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판례가 되어 우리 의사들 가운데 이제는 저처럼 황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는 없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현재 관련 법률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향정신의약품관리법, 마약법, 대미관리법 모두‘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로 통합이 되어 있습니다. ‘마약류’가 ‘마약’으로 취급되고 있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마약류에 속한 향정신성 의약품 이 마약 같은 인상을 주고 향정신의약품을 향정신약물로 혼동하기가 쉽습니다. 향정신의약품관리법에 나오는 ‘향정신의약품’은 의학용어가 아니라고 합니다. 정신과 치료약물을 총칭하는 향정신약물 (Psychotropic drug)과 구분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습관성이 없는 향정신약물 전체가 마약으로 오해되면 안됩니다. 일본 법률을 베껴온 것이라는 말도 들었는데, 현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행정 편의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지요. 환자들을 위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될 상황에 의사를 이런 식으로 범법자로 몰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정개협 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우리 의사들의 대응방식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번 단속기간에 적발된 의사회원이 상당히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저를 제외한 몇몇 분들도 정식재판을 통해 승소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분들이 제가 알기로는 다 정신과의사라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타과의사에 비해 저희 정신과 의사들이 지조가 있고, 좀더 사회를 보는 시야가 넓다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허나 대다수 타 회원들은 억울하게 당하고 마는 경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문제만 해도, 물론 법을 만드는 입법부나 정부의 일차적인 책임이 먼저 있겠지만, 우리 전문가들이 그들에게 많이 알려주어야 합니다.
의사들이 여러가지 사회현상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예전에 주역을 잠시 김충렬 선생님(현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배운 적이 있는데 이런 말씀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사들에게 대통령을 시켜야 합니다. 대학총장도 말입니다. 아주 잘 할 겁니다. 왜냐하면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과 결과를 따지고 예후를 살펴 병을 치료하는데 수련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라구요. 특히, 정신과 의사는 인류의 상처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직업소명을 가진 직업입니다. 이 사회가 앓고 있는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찾게 하는 것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중국의 민주운동가 쑨원(孫文), 말레이시아 대통령 마하티르도 의사 출신인 점도 되새겨 볼만 합니다 .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말씀 한마디 해 주십시오.
실은 관심만 있지 공부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정신치료학회에서 주로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주역 64괘(卦) 중 제 49괘(卦)에 나오는 ‘택화혁(澤火革: 혁신할 때 가 무르익다)’을 종종 떠올리곤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새 정부가 들어서면 세상이 시끄럽거든요. 의약분업도 마찬가지이고, 복지부 장관도 바뀌어 뭔가를 개혁하려 할 텐데, 염려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벌어지는 현실은 ‘혁괘’에 나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혁(革)이란 ‘바로 잡는다’라는 뜻인데, 그렇게 하려면 잔꾀를 부리거나 사욕(私慾)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도(正道)를 지켜야 ‘혁’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혁’은 충분히 시기가 무르익은 다음에 행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혁’이 필연(必然)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면 후회를 남기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며, 천지가 변하고 새로워져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지금 대통령의 코드가 이 ‘혁’괘에 맞춰져야 우리 민족이 잘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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