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거의 흙이 떨어져 나가 뼈만 남은 노년기 지형에 속한다고 하나 형성된 나이로는 백두산, 울릉도, 독도에 비해 반에 지나지 않는다. 울릉도, 독도는 최소 10만년 전에 바다 밑에서 위로 용암이 솟구쳐 끓어 오른 해중 봉우리 산이다. 한반도와 그 북부에서는 지질학적으로는 최고 원로급에 속한다.
금강산은 이처럼 용암 융기에 의한 화산은 아니되 지극히 물의 기운이 강한 산이다. 동해 바다의 한류, 난류가 접하면서 생긴 수증기가 서쪽 바람으로 몰아치는 풴 현상으로 태백산맥 중앙에 한반도의 평균 4배 이상 강수량의 비를 쏟아 부음으로서 오랜 기간 흙이 벗겨 내려가 지금의 바위산이 되었다.
만물의 생명 토대인 흙이 부족하다 보니 금강산은 지리산 처럼 어머니 가슴과 같은 자애로운 품성이 거의 없다. 매몰차고 호되게 차가운 미인과 같은 악산(惡山)이다. 뭇 생명이 자라고 깃들지 않기는 관악산도 마찬가지이지만 암반이 많으면 묘를 쓸 수 없어 악산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이 악산을 무척 반긴다. 인간세상의 잔정과 자질구레한 인연을 정리하고 큰 수행을 할 수 있어 마의 태자, 서산 대사 등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금강산을 거쳐 갔었다. 입구의 고개가 단발령(斷髮嶺)으로 이름 지어진 유래도 멀리서 금강산을 보면 죽기 전에 도를 닦아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삭발한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동이(東夷)지역의 명산으로 대표하는 이 금강산에 중국(中國: 皇居之都) 사신들이 오면 우선 챙기는 두 가지 - 고려인삼, 조선미인을 갖고 금강산에 와서 암벽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면 대접을 다 받은 것으로 계산되었다.
일제 치하에 일본 화가들이 금강산 그림을 남기지 못한 이유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종합적 거시적이지 못하고 좁고 깊게 보는 습관이 있어 금강산 경치를 한 몫에 화폭에 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금강산은 모질게 수도자들의 세속인연을 떼어 놓기로 유명한 산이지만 숱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있어서도 남달랐다.
1953년 휴전을 앞두고 남북한의 지도자들은 각기 「금강산을 장악하라」고 명령함으로써 남북한 군대는 최후의 격전을 감행하여 지역단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게 하였다.
이승만대통령은 자식을 키워 보지 못했고 김일성주석은 만주에서 들개처럼 쓰러진 주검들을 보고 자랐기에 두 지도자는 생명에 대한 적극적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듯 하다.
또 그 당시 김주석은 서울을 탈환하고 휴전하자고 중공군 팽덕회사령관에게 제의하자 팽사령관은 재탈환에 20만명 정도가 희생될 터인데 인민군이 앞장서면 물자와 후방 지원을 하겠다고 논쟁함으로 사흘 뒤 스티코프 쏘련대사가 모스크바에 보낸 전문의 답신을 보고 휴전 결정에 따랐다.
그 후 금강산 지구 전투에서 남측은 3개 사단(5, 11, 15사단)을 교대하며 지켜내었고 북측은 4개 사단(7, 6, 19사단) 등을 교대로 투입하여 공략하였다.
더 이상 확전을 피하고 휴전을 학수고대하는 유엔군의 해공군 지원이 없었기에 국군이 마지막에는 뺏기게 되나 이 전투에서 북측은 남한에서 동원한 의용군, 학도병의 대다수를 투입시킴으로서 남로당 출신의 권력 배후가 될 소지를 사전에 없애는 한편, 증강된 병력으로 금강산을 탈환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전투는 남측 젊은이들끼리의 혈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물어지는 본대의 철수와 재정비 공격의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금강산 입구로 가는 월비산 208, 351 두 고지에서 남측 대대장은 본인은 물론 전 부하들에게 비장한 진내 사격을 결의 요청하고 진지와 참호에서 마지막 수통의 물, 실탄, 건빵을 확보한 뒤 아군의 포탄이 머리위에 작렬하는 가운데 피아를 가리지 않는 최후를 남겼다.
난 업무상 군사문제와 전쟁사에 대해 조금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으나 6.25전쟁에 이미 진내사격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해병 청룡부대는 월남전 짜빈동 전투에서 방어병력 1개 중대로 월맹군 2개 대대를 격멸했는데 그때 진내사격으로 이룬 것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현대 전투사에서 적들과 최후를 같이하며 우군의 포격을 요청하는 이 동반자살을 어렵지 않게 활용하는 독종의 군대는 한국군이 단연 앞섰다.
한국군을 존경하는 몇 마디 대화가 전쟁고아를 유수한 기업가로 급성장시킨 사례도 있다. Thomas Park 이라는 한국전쟁 고아 출신(51년생)인 미국 의료기기 사업가는 최초로 북한에 복강 내시경과 자신이 개발한 고가의 장비들을 무상으로 기증하여 북한으로부터 무척 신뢰를 얻고 있다.
미군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를 둔 이 사람이 미국 대학교수집으로 입양하여 말썽만 피우다 17세가 되어서야 갑자기 모범생으로 둔갑한 계기가 한국군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웃집으로 이사 온 그린베레 출신이
‘너는 한국사람 닮았구나. 부모 중 누가 한국인 이냐?’ 묻자
‘내 고향은 버지니아예요. 한국은 몰라요.’
‘우리 그린베레는 전 세계에서도 최고로 막강한 부대인데 월남전에서 우리보다 훨씬 머리가 뛰어나고 용감해서 우리가 못하는 작전을 다 해낸 군인들이 바로 한국군이야 !
그래서 우리들은 차를 타든 길을 가다가도 먼저 한국군에게 비켜 주었고, 먼저 본 사람이 경례까지 해주었어. 정말 존경스런 사람들이었지.‘
‘그래요. 제 엄마가 바로 한국인이에요.’
이 대화가 변화의 계기가 되어 Thomas Park은 무섭게 노력하여 대학을 두개 나오고 의료기기 관련 특허도 50여개를 따서 명실상부한 CEO로 활동하게 되었다.
금강산은 이처럼 뛰어난 한민족 젊은이들의 숱한 생명이 민족분단의 제단에 올려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휴전협정 조인일인 53년 7월 27일을 불과 아흐레 앞둔 7월 18일에서야 금강산 전투는 종료되었다. 6개월 앞둔 인근의 향로봉 전투, 용문산지구 전투에서는 중공군 3개 사단이 국군 정예 6사단, 을지부대에 의해 궤멸 되었다.
고향을 떠나온 그 중공군들의 상당수는 조선의용군 예하 부대, 동북3성에서 징집된 조선족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장정 시설 20만 일본군의 포위에 질식사 직전에 있던 서안의 중국 공산군을 조선의용군이 많은 희생을 치루며 게릴라식 지게 부대를 편성해서 살려내었고 또 국부군을 향한 양자강 도하작전에도 최선봉에 섯을 정도로 막강한 전투력을 가졌으나 거의 대다수를 한국전에 몰아넣어 소진시킴으로서 북경 정권 수립과정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제 몫을 요구하지 못하고 조선족은 소수민족화 될 수밖에 없었다.
민족 내부적으로 단합하지 못하고 지도자의 통찰력이 부족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하고 분통 터지는 것임을 이 지역의 전투사만 보아도 생생히 드러나고 있다.
가끔 전방 지역, 북쪽 지역으로 갈 기회가 있으면 전우여 잘자라(국군 유행가), 카츄사(공산군 춤곡) 등을 연주하는 것도 나로서는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니라, 조국의 부름에 따라 현 내 나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살다 떠나가면서도 유독 그 노래들을 즐겨 불렀던 한민족 동포로서의 선배들에 대한 뒤늦은 진혼곡이기도 하다.
금강산 입구에 들릴 때마다 전사자들의 명복을 빌고 기도하였는데 금강산 해변에 다시 피를 흘리는 사건이 생기니 더욱이나 가슴 저민다.
언제 금강산은 머금은 피 대신 시원한 물로 한민족의 머리와 가슴을 시원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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