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병의 정신치료 : 한국정신치료학회회보 2008.1   
한국정신치료학회회보 제34권 제5호 2008년 1월

◎ 卷頭言 ◎

정신분열병의 정신치료

李 東 植 (명예회장)


정신분열병이란 원래 프랑스에서 조발성 치매(démence précoce)에서 Kraepelin의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 Bleuler의 정신분열병(Schizophrenie)으로 변천되어 왔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실제로는 다른 질환과 혼돈되는 일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내 자신의 경험으로는 1942년 가을부터 서울의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정신과에서 정신과를 시작했을 때에는 치매개념에서 분열병개념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였다. 이때에는 分裂病과 조울병은 內因性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인슐린 쇼크치료와 전기충격요법이 주였고 정신치료란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상상도 못할 형편이었다. 프로이드도 '정신분열병은 자기애적인 신경증이다.', '리비도가 부착(전이)(besetszen 獨 cathect 英)되지 않아 정신분석이 안 된다.'고 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정신치료를 시작하거나 또는 시작하려고 하고 있을 때였다.

이 당시에도 독일정신의학에서는 망상기분(Wahnstimmung) 또는 妄想知覺 (Wahn- wahrnehmung)이란 말이 내 주목을 끌었다. 감정이 투사되어 망상이나 환각이 된다는 인식이다.

Federn, Sullivan, Frieda Fromm-Reichmann, Boss, Benedetti, 기타 많은 사람들이 분열병의 정신치료를 해왔고󰡐50년대에 미국에서 당시 APA 會長이었던 Whitehorn이 “미국에서는 아무도 정신치료로써 정신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은 Frieda Fromm- Reichmann은 정신병을 정신치료로써 고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정신병의 정신치료에 관한 논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분열병의 정신치료를 하면서, 분열병 환자도 관계 형성이 되고 발병전의 대인관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화와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Boss의 사례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와서 정신안정제가 출현해서 정신치료를 할 수 있는 상태로 환자를 유도할 수 있게 되어 정신치료를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물론 약물을 사용하면 감정이 억압이 되어 감정처리를 방해하지만은 이것은 양을 조절하든지 중지해서 조절하면 된다.

내 자신의 경험으로는 모든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분열병도 관계형성과 대화 소통으로 치료가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연응기제도(隨緣應機濟度), 즉 관계에 따라서 환자의 힘과 때, 기회(timing)에 따라서 치료를 하면 된다. Benedetti는 “불안의 자리(Locus der Angst)”란 말을 쓰는데, 이것은 내가 말하는 핵심감정과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안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Kohut는 ‘분열병은 심리적 발달단계가 낮아서 공감이 되지 않아 정신치료를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양인, 서양문화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Prouty의 pretherapy 같은 것이 등장하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모든 정신장애는 공감의 장애고 공감이 치료고 공감은 환자의 핵심감정을 공감하는 것이다. 그럴러면 치료자의 마음이 비어 있어야 된다. 치료자의 핵심감정이 淨化되어(心齊) 허심(虛心)이 되어야 한다. 자비심(慈悲心), 仁이 있어야 한다. 凍土에 떨고 있는 환자에게 봄, 즉 자비심, 인(仁), 하나님의 은총을 가져다주는 것이 정신치료의 극치다. 모든 환자는 어떻게 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환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것을 실현을 못할 따름이다. 여기 치료자가 공감을 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지켜보고 같이 있어주고 같이 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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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